조선의 스물여섯 번째 왕, 고종
대한제국을 꿈꾼 비운의 황제, 고종
0. 왕릉 위치와 왕릉 사진
위치: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홍릉과 유릉 단지 내에 있습니다. 고종의 왕릉은 **홍릉(洪陵)**으로,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 민씨의 능입니다. 두 분의 능을 한 봉분 안에 모시지 않고 나란히 조성한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 형식이며, 대한제국 선포 이후 조성된 황제릉의 양식을 따릅니다.
1. 왕과 관련한 키워드는 무엇이 있을까.
고종과 관련한 주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 흥선대원군: 고종의 아버지이자,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10여 년간 강력한 섭정을 펼치며 왕권 강화와 쇄국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 명성황후: 고종의 왕비이자 국정 운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친청, 친일, 친러 등으로 세력을 바꾸며 외세에 맞서려 했습니다.
- 개항: 쇄국 정책을 고수하던 조선이 일본의 압력에 의해 **강화도 조약(1876년)**을 통해 문호를 개방하고 근대 국제사회에 편입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 근대화: 개항 이후 서양 문물과 제도를 수용하여 국가를 개혁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이 이루어졌습니다. (예: 별기군 창설, 통리기무아문 설치, 유학생 파견 등)
- 갑신정변(1884년): 김옥균 등 개화파가 일으킨 정변으로, 급진적인 개혁을 시도했으나 청의 개입으로 실패했습니다.
- 동학농민운동(1894년): 봉건적 수탈과 외세 침탈에 저항하여 발생한 대규모 농민 봉기로, 청일전쟁 발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 청일전쟁(1894~1895년): 조선의 종주권을 놓고 청과 일본이 벌인 전쟁으로, 일본의 승리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 갑오개혁(1894년): 청일전쟁 중 일본의 강압과 국내 개화파의 주도로 이루어진 대대적인 근대적 개혁입니다.
- 을미사변(1895년):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으로,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의 직접적인 계기가 됩니다.
- 아관파천(1896년): 고종이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으로, 조선의 외세 의존이 심화되었습니다.
- 대한제국 선포(1897년): 고종이 환궁 후 황제로 즉위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며 자주독립을 선언한 사건입니다.
- 광무개혁: 대한제국 선포 후 고종 황제가 추진한 근대화 개혁으로, 자주적인 개혁을 통해 부국강병을 획득하고자 했습니다.
- 을사늑약(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사실상 보호국으로 만든 강제적인 조약입니다.
- 헤이그 특사(1907년): 고종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한 사건입니다.
- 강제 퇴위: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일본에 의해 강제로 황위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2. 타임라인 별 업적
- 1863년 (고종 즉위년): 12세의 나이로 즉위. 흥선대원군의 섭정 시작.
- 1866년 (고종 3년): 병인양요 발생.
- 1868년 (고종 5년): 오페르트 도굴 사건 발생.
- 1871년 (고종 8년): 신미양요 발생.
- 1873년 (고종 10년): 고종의 친정 시작, 흥선대원군 하야.
- 1876년 (고종 13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 체결로 개항.
- 1881년 (고종 18년): 영선사, 신사유람단 파견 등 근대화 시도.
- 1882년 (고종 19년): 임오군란 발생. 청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
- 1884년 (고종 21년): 갑신정변 발생.
- 1885년 (고종 22년): 거문도 사건 발생 (영국 함대의 불법 점령).
- 1894년 (고종 31년): 동학농민운동 발생. 청일전쟁 발발. 갑오개혁 시작.
- 1895년 (고종 32년): 을미사변 (명성황후 시해). 을미개혁, 단발령 실시.
- 1896년 (고종 33년): 아관파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 1897년 (고종 34년):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환궁.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 황제 즉위. 광무개혁 추진.
- 1904년 (광무 8년): 러일전쟁 발발.
- 1905년 (광무 9년): 을사늑약 강제 체결.
- 1907년 (광무 11년): 헤이그 특사 파견. 일본에 의해 황제 자리에서 강제 퇴위. 순종에게 양위.
- 1919년 (일제 강점기): 고종 승하.
3. 타임라인 별 업적에 대한 왕의 서사와 역사적인 사건들
고종은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첫 황제로서, 1863년(고종 즉위년)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은 흥선대원군의 섭정부터 시작하여 외세의 침략과 내정 간섭, 자주독립을 위한 노력, 그리고 결국 국권 상실에 이르는 격동의 근대사를 관통합니다.
흥선대원군의 섭정과 쇄국 정책 (1863~1873년): 고종 즉위 초 10여 년간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섭정기였습니다. 대원군은 무너진 왕권을 재건하고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는 비변사의 권한을 축소하고 의정부를 강화하여 왕실 중심의 정치를 재확립하려 했으며, 세도정치의 근원이자 특권의 상징이었던 서원들을 대거 철폐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된 경복궁을 중건하여 왕실의 위엄을 되찾으려 했으나, 이는 막대한 재정 부담과 백성들의 노역을 강제하여 큰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서양 세력의 침략에 맞서 쇄국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1866년(고종 3년)에는 프랑스군의 침략인 병인양요를 격퇴했으며, 1871년(고종 8년)에는 미국의 침략인 신미양요를 물리쳤습니다. 이러한 쇄국 정책은 일시적으로 국방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왔으나,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조선의 근대화를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출처: 『고종실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흥선대원군', '병인양요', '신미양요')
고종의 친정과 개항 (1873~1884년): 1873년(고종 10년), 고종은 명성황후를 비롯한 민씨 척족 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친정을 시작하며 흥선대원군을 하야시켰습니다. 이제 직접 국정을 운영하게 된 고종은 개방과 근대화의 필요성을 점차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1876년(고종 13년), 일본의 강압적인 요구에 의해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면서 조선은 마침내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이는 조선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었지만, 불평등 조약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개항 이후 고종은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근대화를 추진했습니다. 별기군과 같은 신식 군대를 창설하고,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설치하여 외교와 통상 업무를 전담하게 했습니다. 또한 영선사(領選使)를 청나라에 파견하여 근대 무기 제조 기술을 배우게 했으며, 보빙사(報聘使)를 미국에 보내 서양 문물을 시찰하게 하는 등 다방면으로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는 보수 세력과 백성들 사이에서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882년(고종 19년)에는 신식 군대와의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인들이 일으킨 임오군란이 발생하여 명성황후가 피신하고 흥선대원군이 다시 정권을 장악하는 일시적인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주둔하며 내정 간섭을 심화시켰습니다. 1884년(고종 21년)에는 김옥균, 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가 일본의 지원을 받아 갑신정변을 일으켜 근대적 개혁을 추진했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나면서 외세의 간섭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출처: 『고종실록』,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강화도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외세의 각축과 국권 침탈의 시작 (1894~1905년): 1894년(고종 31년), 동학농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조선 정부는 청에 진압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일본군도 조선에 파견되면서 청일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조선에 대한 청의 영향력은 사라지고 일본의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되었습니다. 전쟁 중 일본의 강압과 국내 개화파의 주도로 갑오개혁이 추진되어 과거제 폐지, 신분제 개혁 등 대대적인 근대적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1895년(고종 32년) 일본은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자신들의 지배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고종 33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아관파천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일본의 영향력을 일시적으로 약화시켰지만, 러시아를 비롯한 서구 열강의 이권 침탈이 가속화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출처: 『고종실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개혁', '을미사변', '아관파천')
대한제국 선포와 국권 상실 (1897~1910년): 1897년(고종 34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환궁한 후, 자주독립 국가임을 천명하며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이는 조선이 자주적인 근대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 선포 후 광무개혁을 추진하여 근대적인 산업 발전, 교육 제도 개편, 군사력 강화 등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야욕은 노골화되고 있었고,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이 확고해졌습니다. 결국 1905년(광무 9년) 일본은 무력으로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사실상 보호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고종은 이 조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1907년(광무 11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헤이그 특사를 파견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일본은 이를 빌미로 고종에게 강제 퇴위를 요구했고, 고종은 결국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 순종에게 양위하게 됩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었고, 고종은 1919년(일제 강점기) 덕수궁에서 승하했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은 조선이 근대 문명을 받아들이고 자주 독립 국가로 거듭나려 노력했지만,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속에서 결국 국권을 상실하게 된 비극적인 시기였습니다.
4. 왕과 관련된 추천 도서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9권 고종실록
- 저자: 박시백
- 출판사: 휴머니스트
- 요약: 만화로 풀어낸 조선왕조실록 시리즈 중 고종 시대를 다룬 부분으로, 흥선대원군의 섭정부터 대한제국 선포, 국권 상실에 이르는 격동의 역사를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고종 시대의 인물과 사상: 개화와 수구의 갈림길
- 저자: 이태진
- 출판사: 태학사
- 요약: 고종 재위 기간 동안 활동했던 주요 인물들과 당시의 복잡한 사상적 흐름을 깊이 있게 분석한 학술 도서입니다.
- 나는 대한제국 황제다: 고종, 서세동점의 시대에 자주독립을 외치다
- 저자: 신명호
- 출판사: 휴머니스트
- 요약: 고종이 단순히 무능한 왕이 아니라 격동의 시대 속에서 자주독립을 위해 고뇌하고 노력했던 인물임을 재조명하는 책입니다.
- 한국근현대사 (상) : 개항기
- 저자: 한국역사연구회
- 출판사: 역사비평사
- 요약: 고종 재위 기간을 포함하는 개항기 전체의 역사적 흐름과 주요 사건들을 학술적으로 다룬 개론서입니다. 고종 시대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명성황후: 비운의 황후인가, 개혁의 주역인가
- 저자: 이덕일
-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요약: 고종과 함께 격동의 시대를 보낸 명성황후의 생애와 역할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는 책으로, 고종 시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인물에 대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출처 및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 우리역사넷 (contents.history.go.kr)
- 위키백과 (ko.wikipedia.org)
- 『고종실록』 (sillok.history.go.kr)
- 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 (www.heritage.go.kr)